학부모

청소년 흡연문제, 임신문제는 이야기가 많은데 왜 청소년 야자문제는 말하지 않는걸까?
(트위터 Solkr 님의 질문글 인용)

우리나라에서 공부와 관련된 이슈는 부모와 사회에선 암묵적인 성역의 대상이다.
아무리 늦게 자더라도 공부한다면 좋아라 하는 게 현실이다.

청소년의 야자문제가 논의 대상에서 등장조차 못하는 건 분명하다.
어떻게든 공부를 시켜서 좋은 대학/학과에 보내야 한다는 부모의 생각과
상급 학교에 잘 보내서 명성을 쌓으려는 학교,
청소년의 건강보단 국가 경쟁력에 매달리는 정부가 만나 이 틀이 유지되고 있다.

야자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지 못하는 건,
그걸 안 하면 사교육이 남은 시간대를 파고들어서 수많은 학부모에게
사교육 고통을 줄 수 있다는 논리가 나름 통하기 때문이다.
야자로 학생들을 밤시간까지 잡아주면서 사교육경감과 돌봄기능까지 담당하는 셈이다.
(고교생 자녀를 둔 일부 부모는 밤 10시까지만 하는지라
야자 시간을 더 늘려줄 수 없냐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참고로 서울 강남의 일부 학교에선 여러 부모들의 사교육땜시 야자를 실시하지 않는 곳도 있다고 한다.
야자를 하든 안 하든 아이들을 "무한 학습"의 터로 내몰면 스트레스를 받는 건 당연지사다.
입시위주의 교육 영향이 있다곤 하지만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재미있게 살펴볼 점은 고교때의 야자가 직장에서의 야근과 묘하게 매치가 된다는 점이다.
둘 다 하고 싶지 않은데 별 수 없이 해야 하고, 늦게 가는 만큼 파김치가 되는 것 역시 유사하다.
물론 그걸 한다고 해서 효율성이 높아지는 건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대입과 대입(상급학교)을 위한 학습을 위한 공부에 집중하는지라
학교에 있는 시간대 외에 세상에 대한 관심을 보일 여유도 없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데 제약을 받는다는 데 있다.
학부모들은 자녀를 볼 때 공부 외에는 쓸데없는 짓으로 보는 시선이 여전하기 때문에
청소년 시기에 필요한 경험을 놓치기도 하고, 생각할 여유, 쉼의 지혜를 놓치고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삶의 가치관에 대해 생각해볼 때이다.
무엇 때문에 공부하고, 무엇 때문에 하루 하루 살아가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부모와 자녀간에 대화가운데 이뤄질 필요가 있다.
삶에 대한 지표를 찾아가는 과정이 있어야 공부도 공부답게 할 수 있고,
한정된 시간 가운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여지도 생긴다.

생각할 여유부터 마련해보고 대화를 나눠보자. 쉼, 놀이에 대해서 다시금 돌이켜보자.
사람은 일하는 기계가 아니다.
쉼과 놀이를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고, 에너지를 동력삼아 일을 할 수 있는 게 사람이다.

※ 이 글은 지난 2011년 8월 18일에 트위터에 직접 남긴 글을 보완하여 페이스북에 남긴 글을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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