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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교육

평준화된 고교를 비평준화한다고 교육이 나아질까요?

(이 글은 지난 2007년 9월 26일에 다음 아고라에 직접 올린 글을 옮긴 글입니다.
 추천을 별로 받지는 못했지만 나름 열심히 쓴 글이라 한 번 옮겨봅니다)


평준화를 하든 비평준화를 하든 우리나라의 부모님들은 자녀를 어떻게든
좋은대학/학과에 합격시킨 후 좋은 직장 혹은 전문직종에 들어가서 잘 살기를 바라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평준화를 하든 비평준화를 하든 사교육의 위력을 줄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편이죠.
 
그렇다고 평준화된 고교를 비평준화로 싸그리 바꾼다면 고교 역시 대학만큼이나
서열화 되는겝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경쟁이 더욱 심화된다는거죠.
우리나라 교육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하위권에 맞춰 교육을 하는 교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입에서도 중하위권은 찬밥신세죠.결국 고교 역시
소수의 엘리트 양성 기관으로 전락되고 상당수는 들러리가 되는게죠.

문제의 정점은 대입에 있습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유명 4년제 대학/학과에
다들 진학하려고 아우성이고, 지방교육청에서는 유명 4년제 대학/학과에 진학한 학생의
수에 따라 예산배분이 달라진다는 웃지못할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예산배분관련
이야기는 실제 교육관련 세미나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모 지방에서는 유명 대학/학과에
많이 합격한 고교에 예산지원 혜택을 주겠다는 정책을 내놨다가 언론의 못매를 맞았죠)
.
아울러 명문고교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기준 역시 좋다고 하는 일부 대학/학과에 얼마나
합격시켰느냐 여부죠.

모든게 대입에 초점을 맞추었을 뿐 정작 교육의 질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교육의 질이 높아지려면 문제 하나 더 맞출 수 있는 비법을 알려주는게 아닌
수준별 교육이 이뤄질 수 있어야하며, 어떤 곳이든 수준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고교를 비평준화하여 서열화하는게 아닌 어떤 곳이든 수준별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겝니다. 보통 이러한 말을 상향식 평준화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실제로 상향식 평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교사, 학생, 학부모, 정부의
합심이 무엇보다 필요하지만... 워낙 교육이라는게 복잡하게 얽혀있는터라 아무도 나서려고
하지 않고 덮어두려고 합니다.

뭐... 인문계고교를 제외한다면야 우리나라 교육체계는 비평준화로 되어 있습니다.
과학고, 외국어고, 자립형사립고, 실업계고교(특성화고교 포함)만 봐도 그렇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평준화된 상당수의 인문계고교마저 비평준화한다면 옛날 경기고-서울대의
전처를 밟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최근들어 한창 불고 있는 특목고, 자사고 입시가
명문 인문계고교 입시로 번질테고... 또 다른 입시를 부를 건 뻔한 사실입니다.

과학고, 외국어고 입시를 지켜보면 알겠지만... 정작 돈버는건 사교육입니다.
어떻게든 과학고, 외국어고에 붙게하려고 중학교 1학년때부터 X맥학원 등지에
등록하는 학생들이 넘쳐나고... 입시브로커까지 더 활개치는건 불보듯 뻔한 일입니다.
학생들에게 대입 뿐 아니라 고입이라는 괜한 짐을 남겨주는 셈이 되는게죠.
고입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준 것 만으로도 고교평준화가 좋은 영향을 준 건
분명하다고 봅니다.

제가 볼 땐 평준화 비평준화를 떠나 좋은 교육이 이뤄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봐야지...
고교평준화/비평준화를 이야기하는건 앞으로의 교육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고교평준화를 깨자는 이야기는 민사고, 과학고, 외국어고를 더 늘리자고 이야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오죽하면 교육부의 특목고 억제정책에도 불구하고 각 지자체에서 특목고를
어떻게든 유치하려고 난리를 치고 있을까요? 특목고가 좋은 기능을 할거라 생각하고
만들어놨더니 외국어 인재를 양성한다던 외고에서 어문계열로 진학하는 비중이 적다는건
특목고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걸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오히려 인기학과에 많이 몰려 있습니다)

평준화/비평준화를 논하기전에 특목고가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부터 살펴보는게
필요하리라 보며(실제로 이들이 속한 교육기관이 사실상 비평준화 교육기관이기 때문),
우리가 정말 교육의 질에 대해 얼마나 생각했는지... 실상은 좋은 대학/학과에 보내기 위한
도구로 만들고 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비평준화로 했을 경우
정말 교육의 다양성이 이뤄질 수 있는지도 과거의 예 등을 토대로 살펴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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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사람들이 고교평준화(인문계고교에 한함)에 문제제기를 하는 까닭은 잘나간다는
고교에서는 고교간의 격차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에서 이를 감추려고 애를 쓰고
있는터라 왜 진실을 감추느냐라고 문제제기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고교간의 격차를 인정하고 고교평준화제도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의 주장에 대해 일면 인정할 부분도 존재합니다. 정부연구기관의 자료에 따르면
도시에 있는 고교와 농어촌에 있는 고교의 학력차가 존재하는 걸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고교평준화를 깬다고 해서 교육의 질이 높아지고 교육이 정상화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즉, 비평준화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것이죠)

이에 대한 근거로 이미 비평준화 교육을 실시중인 과학고, 외국어고, 민사고(자립형사립고)
입시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과학고, 외국어고, 민사고(자립형사립고) 입시는
대입보다도 더 뜨거워져 있습니다. 오죽하면 외고 입시 때문에 토플을 응시하는 학생이 늘어
토플 접수가 마비되는 사태가 일어날 정도입니다.
(이 사건 이후 각 교육청에서는 토플을 반영치 않기로 했죠. 뭐... 상당수 외고에서는
다른 영어시험을 반영하려고 노력을 꽤하고 있다만)
 
특목고 입시설명회에는 수많은 학부모들이 벌때같이 몰리고 어떻게든 특목고에
들어가기 위해 초등학교때부터 영재교육원에 붙이려고 갖은 수를 쓰고 있습니다.
(영재교육원에 다닌 경력이 있으면 과학고 입시에서 좀 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죠.
최근엔 여론의 못매에 영재교육원에 다녔다는 경력을 반영치 않겠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만... 실제로 그렇게 할련지는 가봐야 알겠죠)

평준화된 인문계고교가 비평준화가 된다면 앞서 이야기했던 특목고 입시와 유사한 모습이
나타나게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명문고교의 기준은 SKY대학,의/약/한의대,교대 입학생이
얼마나 많느냐의 정도일 뿐 교육환경 등에 대해서는 논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명문고교의 기준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고교는 엄청나게 몰릴테고 안 좋은 평가를 받은
고교는 X신 취급을 받으면서 다들 들어가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비평준화된 고교가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고교간 격차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고교평준화제도를 실시하기 전의 K(경기고)-S(서울대) 라인처럼 고교간 서열이 더욱 가속화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기존에 비평준화를 실시하고 있는 고교까지 모두 고교평준화를
실시하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평준화제도를 실시하는 고교에 비평준화로 돌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평준화제도 속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책을 마련하는게 필요하겠죠. 예를 들자면 수준별 교육을 할 수 있는 방안이라든지
교육부에서 교육의 가이드라인은 제시하되 교사에게 어느정도 자율권을 주어 창조적인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서포트할 수 있는 방안을 등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비평준화는 특목고,자립형사립고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중요한건 평준화/비평준화가 아닌
어떻게 창조적인 교육이 이뤄질 수 있을지를 모색해야 하며, 도농과의 격차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이 나와야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EBS 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평준화라 해서 모든 걸 평준화하려는게 아닌 그 안에서
교육의 다양성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교육이라는게 소수의 잘하는 학생을 위한 엘리트정책도 필요하지만 대다수의 잘 못한다고
하는 학생들도 교육 받을 수 있는 복지차원의 정책으로도 충분히 접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예전 경기고-서울대와 같은 무자비한 입시지옥이 아닌 각자에게 다양한 꿈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고, 경쟁보다는 존중과 배려를 배울 수 있는 교육으로서 더욱 발전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을 가져봅니다.